## 조금이라도 아파 본 사람은 (원문)
조금이라도 아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머리에서 쏟아지는 잠보다
가슴에서 쏟아지는 잠이 더 깊다는 것을
아픔은 오로지 빛의 세기와 소리의 세기에 익숙해진다는 것과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빛살이 쏟아지면 생(生)의 율동이 파도를 탄다는 걸
아프다는 건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불충으로 살아온 육체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라 전해주는 것이다
자신을 분해하여 타인(他人)의 그림자를 재어보라는 것이다
심지어 발가락 사이 무좀균의 소리라도
들어주라는 것임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이 들려온다 누군가...
그 바퀴에 깔려 질식하거나
거머쥔 운전대에서 잠시 잊고 나온
조반의 배고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또는 철럭이는 시곗바늘의 짧은 아우성 속에서 자신의 내장을 열어젖히고
이제껏 살아온 시간의 텃밭을 돌아다 보며
버려야 하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 하나 꺼내어 밑줄을 그려가며
어버이에 대한 불효를 생각한다든가
길게 늘어진 링거줄에서 떨어지는 소금물에서
지난해 절여왔던 원한의 앙금을 분리해 낼지도 모르고
그들이 가지는 빛의 세기와 강약만으로
일간지 지면의 불온을 점검해 나갈지도 모른다
힘없는 어린 홀수들이 흩어져 있는 동안 식량들은 자라지를 않았고
검은색과 날 선 동그라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곳에선
미세한 혈관이 파손되고 세포분열이 일어났다고
조금이라도 아파 본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로 빛과 소리에 민감해
해바라기처럼 늘 어디로 향(向)하고 싶어하거나
나팔꽃처럼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는 긴 잠에서 하품을 하며 식욕을 잃어간다
그동안 그들이 잃어버렸던 빛과 소리에 민감한 만큼을,
## 조금이라도 아파 본 사람은 (변형문)
보셔요, 율동을 타듯 길게 난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옵니다
그 햇살 맞으면 당신, 아시나요
머리에서 쏟아지는 잠보다
가슴에서 쏟아지는 잠이 더 깊다는 것을
내 가슴은 빛의 세기와 소리의 세기에
익숙해져 있어도
아직은 눈이 부셔요
흘러가는 날들의 뒷터에서 누군가 숨 막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곗바늘은 짹깍 짹깍 짧은 아우성을 지르고
그 내장을 열어젖히겠지요
여기저기 버려야 할 것들의 목록은
하나하나 밑줄을 그려대겠지요
어버이에 대한 불효라든가, 길게 늘어진 링거줄의
떨어지는 소금물에서 지난해 절여왔던
원한의 앙금 따위를 말이지요
어쩜 그들이 가지는 빛의 세기와 강약만으로
일간지 지면의 불온을 점검해 나갈지도 모를 테고요
우리 어리고 힘없는 홀수들이 흩어져 있는 동안
식량들은 자라지를 않았어요
검은색과 날 선 동그라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곳에선
미세한 혈관이 파손되고 세포분열이 일어났다고
조금이나마 아파 본 당신, 해바라기처럼
늘 어디론가 향(向)하고 싶으신 거죠
나팔꽃처럼 시들어버리기 전에
한동안 당신이 잃어버렸던 빛과 소리에 민감한 만큼
오늘 당신의 머리는 긴 잠에서
식욕을 잃어가는군요
바로 오늘이 상강(霜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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