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정사

당신은 뉘신지요

추곡저 2012. 12. 29. 09:32

              # 당신은 뉘신지요 당신은 뉘신지요 얼굴도 없이 찾아와 온통 저어 놓는 이 아침에 핀 한 송이 꽃이 저녁 구름에 가리어 시들다가 먼 곳 어디서고 울고 있을... 때 오시는 이 당신은 뉘신지요? 청록의 이끼 짙은 고색창연한 우물가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이겠지요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당신이 뉘신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말도 없이 오시는 이 소리도 없이 오시는 이 달이 차는 보름에도 오시고 그믐달이 기우는 날 밤에도 오시고 사뿐사뿐 우물가 빨랫돌을 딛고 철썩철썩 물소리 들리면 오시는 이 고요히 두레박 줄을 당기고 있으신 어제도 그제도 아니 오다가 잊을만하시다기 오시는 이 어스름에 오시어 새벽을 지고 가는 당신... 그리 오시는 것 알 것도 같으오만 뉘신가 느낄 것도 같으오만은 이리저리 흔들리다 샛걸음은 놓고 가시오소 얼굴도 없이 찾아와 온통 저어 놓는 이 당신! -황홀한 정사 중에서(한강 출판사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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