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망의 꽃
저녁나절 부는 바람은 무슨 바람인가
비바람인가 그리움의 바람인가
하늘은 낮게 드리웠고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을 오고 간다
대낮을 훨씬 지난 장거리 발길은 느슨하다
오이나 상추를 사는 사람 생선이나 멸치를 고르는 사람
리어카의 난간에 매달린 수입품 과일이나
머리 잘린 통닭과 인삼 약재들
정육점 안의 벌건 살코기는 집회의 촛불처럼 출렁대고
신발점 앞에선 여러 모양의 신발들이
각기 저희들 운명에 동전을 던지고 있다
뻥튀기 아저씨의 뻥튀기 소리가 철커덕하고 지나간 뒤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는
이런저런 저잣거리 냄새에 도취한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아늑한 전율이 따라다닌다
살아야지, 하늘로 오르는 땀 냄새
땅으로 가라앉는 수채 냄새
더러는 멱살잡이 중년의 지친 콧김까지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에는 들숨 날숨들 한 줄씩 지나간다
칼날 같은 윈도 불빛 아래서
백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야시시
한쪽 눈을 끔벅이자
따라온 시간이 주머니에 들어가
제멋대로 늘씬한 추억과 안식을 고르는 동안
아아, 나는 바람 한 줄 진하게 훑고 가는
저녁나절 저잣거리에 서서
버려진 또 하나의 나를 줏어 들고
고개를 들어 울긋불긋 노을이 진 하늘을 본다
「잘못된 희망과 의지가 상처를 남긴다」
